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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오늘의 구절

[4장. 미국의 유색인종 페미니즘(들)] 소저너 트루스,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

by 페페연구소 2019. 11. 6.
1797년, 노예제 시대에 태어난 소저너 트루스는 제1의 물결 페미니즘이 절정에 달했을 시기에 했던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라는 유명한 질문으로 뚜렷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씨앗을 심었다.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191-192쪽)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라는 그 질문이 뭐길래 유명한 질문이라고 나오고, 흑인 페미니즘에서 항상 말하는 슬로건처럼 된 걸까 궁금했다. 소저너 트루스를 구글에서 찾아보았다. 엥, 일단 1797년에 태어난 사람이란다. 허걱 정말 오래 전 사람이구나. 노예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그가 저 연설로 유명해지기 전까지의 삶은 저 아래 그림의 꽃병의 꽃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으리라. (이하는 위키피디아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Sojourner_Truth)

그림출처. https://thoughtgallery.org & http://www.crunkfeministcollective.com

소저너 트루스는 뉴욕주의 한 도시에서 태어났는데, 그곳은 아마도 독일인들이 정착해 살던 곳이었던 것 같다. 마을 이름도 독일식이고, 아마 그의 주인도 독일인이었던 것 같다. 소저너 트루스도 9살에 다른 주인에게 팔려가기 전까지는 독일어만 말할 줄 알았다고 하니. 어쨌거나 그녀는 9살의 나이에 다른 주인에게 팔려갔고, 잔인하고 가혹한 주인 밑에서 18개월 동안 일하다가 또 다른 주인에게로 팔려갔다. 그 주인은 전 주인보다는 나았지만 그 주인의 부인은 소저너 트루스를 많이 괴롭혔다고 나와 있다.

그러다가 그녀는 옆 집 노예인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옆 집 주인은  본인 소유의 노예가 다른 집 소유의 노예와 결혼하는 걸 원치 않았는데, 그 이유는 만일 그들이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를 본인 소유의 노예로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는 소저너 트루스를 찾아왔고, 마침 또 그 남자의 주인에게 발각이 되었으며, 소저너 트루스의 주인이 개입하기 전까지 그 남자 노예는 엄청나게 가혹한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ㅠㅠ 소저너 트루스는 충격을 받았고 그들은 다시 만나지 안/못했으며, 그 남자는 몇 년 후 죽었다. ㅠㅠ 그리고 소저너 트루스는 나중에 결국 다른 남자 노예랑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는데, 그녀의 아이들 중에는 주인에게 강간당해서 생긴 아이도 있었다. ㅠㅠ

뉴욕주가 노예제 폐지를 선언하고 노예 해방을 위한 입법 절차를 거치는 혼란기 동안 그녀는 아이들 중 신생아인 딸을 데리고 그 주인의 집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갔고, 다른 주인 밑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 노예제도가 폐지되었다. 그러는 동안 전 주인은 불법으로 소저너 트루스의 아들을 알라바마주로 팔아넘겼고, 소저너 트루스는 온갖 노력 끝에 법정투쟁에까지 성공해서 아들을 데려올 수 있는 법적 권리를 얻어 아들을 데려온다. 이 판결을 일컬어 흑인 여성이 백인 남성과 싸워 이긴 최초의 사례라고 한다. 그때즈음부터 소저너 트루스는 노예제 폐지와 관련한 활동을 하고 다니기 시작한 것 같다.

1851년 오하이오주의 애크론에서 열린 회의에서 소저너 트루스가 그 유명한 연설을 하게 되는데, 그 때도 사실 분위기가 순탄치는 않았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흑인 여자라는 이유로 소저너 트루스에게 야유를 보냈고, 연설을 못하게 해야한다고 막기까지 했다. 의장(?)이 허락하여 그녀는 '즉흥적으로' 그곳에서 연설을 하게 되고, 그것이 그 유명한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 연설이었다.

(앞부분 생략) 지금 여기 남부의 흑인들과 북부의 여자들이 모여서 모두 권리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 겁니까?
저기 있는 저 남자는 여자들은 마차에 올라갈 때 도움을 받아야 하고, 도랑을 건널 때 발판이 있어야 하고, 모든 곳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고 말합니다. 아무도 내가 마차에 오를 때 도와주지 않았고, 도랑을 건널 발판을 주지도 않았으며, 아무도 나에게 가장 좋은 자리를 내어준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 나를 보세요! 내 팔을 보세요! 나는 밭을 갈고, 작물을 심고, 수확해서 헛간에 모아두는 일을 합니다. 어떤 남자도 나보다 더 잘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 나는 남자만큼 많이 일할 수 있고 만일 음식이 있다면 남자만큼 많이 먹을 수 있으며, 채찍 또한 참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 나는 아이를 열세명 낳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노예로 팔렸습니다. 내가 어머니로서 슬픔에 잠겨 울었을 때, 예수님 말고는 그 누구도 내게 귀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 (이하 생략) (영어 원문을 임의로 번역했습니다. 원문출처: http://www.speeches-usa.com/Transcripts/sojourner_truth-woman.html)

바로 이런 것.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가 말하지 않고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 때, 그 침묵을 깨고 나아가 아닌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 이런 용기가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에도 또 앞으로도 계속해서 필요한 것이 아닐까. 모두가 여자는 백인여자만 있는 것처럼 가정할 때, 그 자리에 존재하는 흑인여자로서 나는 흑인여자이고 백인여자와 다르다고 목소리내어 말하는 것. 그것이 바로 소저너 트루스 연설의 핵심이었다. 

소저너 트루스의 뚜렷한 흑인 페미니즘의 핵심은 무기력하지 않고 힘이 있는 존재로서 그녀 자신의 경험이었다. 여성들은 그들의 권리를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히 쟁취해야 한다고 소저너 트루스는 강조했다. 여성 해방으로 가는 통로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 그녀는 백인 여성들이 힘을 얻기 위해 백인 남성들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소저너 트루스에 의하면, 만일 당신에게 힘이 필요하다면 힘을 가져오면 된다.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다.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192-193쪽)

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살아갔다는 것은 대체 어떤 걸까, 지금의 나는 상상조차 잘 하지 못한다. 예전에 '노예 12년'이란 영화를 보고 '너무 끔찍하다, 어떻게 저럴수가'라고 생각만 하고, 너무 힘들어서 빨리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던 그 끔찍함이 소저너 트루스의 삶이었다니. 하지만 그런 그녀의 삶은 곧 그녀의 페미니즘의 장점이 되었다. "무기력하지 않고 힘이 있는 존재로서 그녀 자신의 경험"이 그녀의 페미니즘의 핵심이라니. "힘이 필요하다면 힘을 가져오면 된다.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다." 우와 정말 맞는 말이다. 권력을 구걸할 필요가 없다. 권력을 가져오면 된다. "여성 해방으로 가는 통로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니까. 말이 아니라 행동. 오늘은 이 말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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