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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오늘의 구절

[4장. 미국의 유색인종여성 페미니즘(들)] 생존이란

by 페페연구소 2019. 11. 8.
그녀(오드리 로드, Audre Lorde)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들은 백인 여성과 구분되는 그들의 타자성을 약점이 아니라 강점으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드리 로드는 노예제의 시대를 암시적으로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중에 사회적으로 정의된 바람직한 여성이라는 테두리 밖에 서 있는 사람들, 또 우리 중에 차이라는 용광로 속으로 던져진 사람들은 ... 생존이 학문적인 기술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생존이란 홀로, 인기 없이, 때로는 욕을 먹으며 서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생존이란 우리의 차이점들을 강점으로 바꾸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인의 연장으로는 절대로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194쪽)
For the master's tools will never dismantle the master's house.

우리나라에서 흑인 페미니즘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국처럼 백인 대 흑인으로 인종대결의 구도가 나뉘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물론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란 미국에서 백인의 흑인 차별보다 훨씬 더 심하다는 것을 대강 알고는 있지만. 하지만 나는 흑인이 아닌데 내가 왜 흑인 페미니즘을 알아야 하지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 질문은 곧 그럼 너는 백인도 아닌데 왜 백인들의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냠 하는 자기반성으로 또 이어졌다. 하여튼.

1984년의 '내 등이라 불리는 이 다리'(This bridge called my back)이라는 에세이 모음집에서 흑인 페미니스트 오드리 로드가 했던 말은 그 이후의 저작들에 계속 인용되는 유명한 구절이 되었다. 주인의 연장으로는 절대로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 The master's tools will never dismantle the master's house. 

부당한 상황에서 그 부당함에 대응하고 싶은데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오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우리에게 언어가 필요하다는 의미는, 35년전 미국의 흑인 페미니스트가 했던 말과 같은 바로 그 의미일 것이다. 우리의 연장이 주인집의 연장인 한 절대로 주인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 즉 우리는 우리의 연장을 찾아야 한다. 우리의 언어를 찾아야 한다. 남성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 우리의 언어를 만들어가야 한다. 

사실 또 저 유명한 구절에 대해 쓰려고 인용문을 적다 보니 그 앞의 구절들이 오늘은 또 눈에 들어왔다. "사회적으로 정의된 바람직한 여성이라는 테두리 밖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생존이란 절대로 학문적인 기술이 아니다. 생존이란 홀로, 인기 없이, 때로는 욕을 먹으며 서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지금까지 생존해온 나에게 이 구절이 위로가 되었던 것처럼, 생존하기에 애쓰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구절이 또한 위로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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