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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오늘의 구절

[3장.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페미니즘] 가사노동 임금 캠페인

by 페페연구소 2019. 10. 23.
대신 그들은 여성들이 가정에 남아 있으면서 가정에서 하는 '진짜' 일, 즉 생산적인 일에 대한 임금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사상가들과는 달리, 마리아로사 코스타와 셀마 제임스는 집 안에서 여성의 일이 잉여가치를 창출한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노동자들에게 음식과 옷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위안 또한 제공함으로써 여성들은 자본주의라는 기계의 톱니가 계속 돌아가게 만든다. 따라서 마리아로사 코스타와 셀마 제임스는 남성을 고용한 이들이 여성에게 그들의 가사 노동에 대한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용주들의 지갑만을 두둑하게 만들었을 현금을 주부들이 받도록 하라.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p.149)

둘째가 어릴 때에는 3학점짜리 강의를 한 학기에 한 개만 하는 것도 버거웠다. 워낙 튼튼한 체질이 아닌데 어려서부터 어린이집에 보내놔서 그런지 둘째는 늘 아팠고, 일주일 어린이집을 다니다가 한 번 아파서 일주일 동안 병원을 오가며 집에 데리고 있고, 그러다 보면 일주일에 한 번 강의 나가는 일조차 버거울 때가 있었다. 풀타임 직장에 다니는 누군가가 나에게 어느 날 물었다.

"나는 회사 쉬고 하루만 집에 있어도 할 일이 없어서 뭘 해야 될지 모르겠던데. 애 어린이집 가면 그 많은 시간 동안 뭐 해?" "..........." 잠시 말문이 막힌 사이 옆에 있던 다른 지인이 "야, 나는 쉬는 날 드라마 몇 편만 봐도 하루가 다 가더라."라고 하며 다같이 웃고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내가 자주 보고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도, 내 인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람도 아닌데, 그 누군가가 했던 말은 지금도 이렇게 나에게 남아있다. 

그 '집에서 뭐 하냐'는 질문을 불쑥 받을 때 전업주부들의 입에서 불쑥 나오는 말은 '그냥 집에 있지 뭐'와 같은 말이다. 이상한 말이다. 그냥 있다니. 혹은 과거 자기 인생의 어느 시기를 회상하면서, '내가 그 때 집에서 놀았잖아' 라고도 한다. 집에서 논다니. 전업주부 특히 어린아이가 있는 전업주부는 절대로 집에서 놀 수가 없다. 그런데 자신도 '집에서 논다'고 하고 모든 타인들도 다 '집에서 노는' 줄 안다.

지금 내가 집에서 하는 역할, 현재의 생산적인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남편의 정서적 실질적 필요를 채워주고, 미래의 노동자가 될 아이들의 실질적 정서적 필요를 채워주는 일을 입주 가사/육아도우미의 임금으로 비교해보면 족히 월 300은 된다. 물론 입주도우미처럼 철저하게 육아와 가사에 매달리지는 않지만. 나는 도우미가 아니라 엄마이기에 나의 역할은 도우미와 비교할 수 없이 아이들의 삶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비록 지금 현재는 도우미처럼 항시 대기상태로 육아와 가사를 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나의 일을 하는 그 적은 시간(풀타임 노동자인 남편에 비해 적은 시간)을 제외하고는 육아나 가사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가사노동에 있어서 여성은 남성보다 실제로 시간을 더 많이 쓰기도 하지만 정신노동(mental work)도 더 많이 한다고 한다. 그 모든 것은 노동이다. 그런데 왜 모두들, '논다'고 하는 걸까.

1970년대 서구의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그래서 여성, 정확히 말하면 전업주부들의 가사노동에 대한 실질적인 가치를 주장하고 나섰다는 말이 2019년 대한민국의 오늘에서까지 반갑게 들릴 줄 그들은 알았을까. 실제로 받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논의는 전사회적으로 가사노동에 대한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는 중요성을 지닌다. 가사노동이란 사소한 일이 아니다. 

오늘 '82년생 김지영' 영화가 개봉하는 날이다. 보러 가고 싶지만 보러 가고 싶지 않기도 하다. 책에서 펼쳐지던 답답한 그녀의 인생은 나의 인생이기도 하기에, 나도 내 인생의 문제들을 다 해결하고 살지 못해 답답한데 책 속의 그녀도 답답하기에, 그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답답했다. 이제는 스크린에 펼쳐지는 그 답답함을 나는 과연 마주할 자신이 있는가. 마리아로사 코스타와 셀마 제임스라는, 책 속의 저 여자들은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을 주장하고 요구하는, 현실의 답답함을 깨고 나아가는 급진적인 행동을 했는데. 나는 '교육은 하루아침에 되는게 아니니까. 원래 시간이 걸리니까' 라는 스스로의 방패 뒤에 숨어서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닌가. 영화를 보면 그런 고민들이 더 깊어질 것 같아서 아직 보러 가지 못했다. 하지만 보러 가고도 싶다. 나는 과연 갈 수 있을까. 나의 답답함 다른 여자들의 답답함을 다시 한 번 마주하러. 과연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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