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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오늘의 구절

[3장.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페미니즘] 일부일처제의 허구성 - 엥겔스

by 페페연구소 2019. 10. 21.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일부일처제가 "자연 조건이 아닌 경제 조건에 기초한 최초의 가족 형태"였다고 논평했다. 그의 평가로는 일부일처제 가정은 사랑과 헌신의 산물이 아니라 힘의 정책과 경제적 긴급 상황의 산물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자본주의하의 일부일처제 결혼사랑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전적으로 사유 재산의 이전과 관련된 경제적 제도로 파악했기 때문에, 그는 아내들이 남편들로부터 해방되고자 한다면 여성은 우선 남성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성 해방의 첫 번째 전제 조건은 "모든 여성의 공적 산업으로의 재투입"이며, 두 번째 조건은 가사와 육아의 사회화라고 강조했다.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144쪽)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결혼생활 십몇년차 즈음, 사실상 애초에 했어야 할 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다. 억압적인 엄마 밑에서 생존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어서 주체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없이 살았던 20대까지의 나의 삶의 맥락에서, 늘 로맨틱 코미디 영화만 보았던 나는 사랑의 완성이 결혼이라 생각하고 불같은 사랑의 와중에 결혼을 했다. 그로부터 십몇년이 지나고 나니 어느 순간 나는, 더 이상 옛날같은 사랑이 없는데 이 결혼은 무슨 힘으로 굴러가는 걸까, 난 왜 결혼을 한 걸까, 애초에 그건 바보같은 짓이었던 걸까, 결혼이란 대체 무얼까, 애초에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런 게 있기나 하는 걸까 하는 악순환같은 질문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읽었던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은 나에게 빛과 같았다. 그는 원시부족 연구를 통해, 지금의 일부일처제 이전의 고대사회의 결혼제도란 집단혼이었으며 모계사회였다고 주장한다. 집단혼도 단계가 있었던 것 같은데, 여러 명의 여자와 남자가 함께 살면서 아무하고나 섹스를 하는(켁) 형태의 집단혼이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아이 아빠는 불확실해도 엄마는 확실하기 때문에 모계사회였는데, 어느 순간 가축 사육을 통해 가유재산 축적이 가능하게 되었고, 그 때 당시 가축 가육을 담당하던 남자들이 자신의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어했기 때문에 일부일처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은 그 때부터 남성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게 되었고, 이를 엥겔스는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라고 부른다. 

아 그렇구나...! 결혼이란 게 애초부터 사랑에 기초한 제도는 아니었던 것이구나. 엥겔스에 의하면 철저히 경제적인 이유에 기초한 게 지금의 일부일처제 결혼이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내가 결혼에 회의감을 느낀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갖고 있던 죄책감같은 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사랑의 완성이 결혼이고 따라서 결혼은 죽을 때까지 사랑하다 죽는 것이 결혼이라는 미디어의 결혼 신화가 철저히 허구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여전히 갖고 있던 의문들도 해소되는 것 같았다.

오늘의 구절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바로 그 구절이다. 자본주의의 일부일처제 결혼은 사랑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 아내들은 남편들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해방될 수 있다는 것, 그러려면 모든 여성이 공적 산업으로 투입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가사와 육아가 사회화되어야 한다는 것. 바로 그 주장이다. 

비록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의 저자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대해, 왜 애초에 성별 분업이 남자가 가축 담당으로 된 것인지, 왜 갑자기 남자들이 재산을 자손에게 물려주고 싶어했던 것인지에 대해 설명이 없다며 엥겔스를 비판하는 관점에 힘을 실어주기는 하지만. 그렇지만 그래도 나는 엥겔스가 좋다. 캄캄한 내 결혼생활의 한 줄기 빛과 같았던, 그의 책을 읽던 그 순간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니까. 만일 엥겔스가 지금 시대 사람이었다면 나는 엥겔스 따라 공산주의 혁명 한다고 줄레줄레 따라갔을 거라고 말하던 그 순간을 지금도 기억하니까.

1884년 독일어 초판본과 2019년 지금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번역본 표지. 출간 후 135년이 지났는데도 전혀 다른 나라에서도 읽히는 이런 책이 고전인가 보다. 정말 저렇게 생긴 사람인지 궁금하고 보고싶다. 

자세히 뒤져보니,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 독일어로 처음 출간된 것이 1884년이라고 한다. 그렇게 오래 전에 이렇게 맞는 주장을 했는데. 공산주의 혁명은 결국 실패했고, 이 세상은 자본주의가 판치고 있다. 그래서 엥겔스가 주장한 것처럼 모든 여성이 공적 산업에 투입되지도, 가사와 육아가 사회화되지도 않은 건가. 그렇다면 문제는 정말 가부장제만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도 문제인 건가 하는 생각을 오늘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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