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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경계넘기를 가르치기

흥이 나는 교실 [벨 훅스, 경계넘기를 가르치기]

by 페페연구소 2021.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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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 바로 앞에 나오는 구절이다.

"내가 처음 맡았던 학부 수업에서 나는 초등학교 시절 사명감을 지닌 흑인 여교사들이 보여주었던 수업들, 프레이리의 연구, 급진적 교육학에 대한 페미니스트적 사고에 의지하여 강의했다."(p.13.)

나의 첫 대학 강의는 석사 졸업 후, 천안의 기술교대에서였다. 당시 상담전공이었던 선배가 교육심리학 강의를 맡기길래, '언니 저는 상담이 아니고 평생교육인데요' 라고 했더니, '어우 그냥 다 할 수 있잖아, 그럼 그냥 하는 거야'라고 했다. 그리고 선배 언니가 교재로 쓰라고 한 교육심리학 교재를 그대로 강의했다. 사실 어떻게 강의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토론시간을 주었는지 아닌지도. 다만 뭔가 현장으로 나가서 교육심리와 관련된 기관을 조사해오게 하는 그룹 프로젝트를 내주었던 것과, 학생들이 그 발표를 하는 날 목감기로 목소리가 잘 안 나와 마이크를 들고 코멘트를 해주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오히려 권위 없어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이 기억난다. 흰머리 염색을 중단한 이후로는 더이상 '동안'이란 말을 듣지 않고 있지만, 그 때는 동안이 아니라 나이 자체가 어렸었다. 20대 중반이었으니 아마도 고등학생 같아 보였을 수도 있겠지. 어떤 남학생이 나에게 와서, '근데 죄송하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나이 먹을 만큼 먹었다'고 대답했던가. 자기들끼리 저 어려보이는 강사는 대체 몇 살이야 우리 또래 아니야 그렇게 수군거리다가 누군가 대표로 와서 물어봤겠지. 아무튼 실제로 복학생이나 재수삼수생들은 나랑 나이가 비슷했을 수도 있고, 절대 나이를 들키려 하지 않으면서 일부러 권위적인 태도를 뭔가 유지하려 애썼던 것 같다.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페미니즘을 만나기 전, 평생교육 석사공부를 하긴 했지만 사실상 공부한 게 적고 공부한 내용과 내 삶이 절대적으로 분절되어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페미니즘을 알고, 평생교육 공부를 제대로 하고 나서 가르쳤던 현장은 정말로 달랐을 것 같은데.. 정말 오래 전이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와 이 책('경계넘기를 가르치기')을 읽었을 때, 특히 오늘의 구절, '교실은 흥이 나는 곳이며 절대로 지루해서는 안된다'는 부분을 읽고 충격받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이후에 했던 강의는 달랐으리라. 페미니스트 페다고지 공부를 하고 온 나는 더 이상 강의실에서 권위자인 척 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실상 내가 학점을 주는 권한이 있기에 내려놓아봤자 나에게 권위가 있지만, 최대한 권위를 내려놓고 학생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지식을 강의실에서 권위를 가지는 지식으로 존중해주고자 노력한다. 

혼자서는 나름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인데, 그래서 가끔 '절대로 지루하지 않고' '기다려지는 수업'이란 강의평을 들으면 또 혼자서 기분이 정말 좋아지기도 한다. 나는 그런 강의실에 있어본 적이 없지만, 내가 이끌어가는 강의실은 다를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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