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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오늘의 구절

[2장. 급진주의 페미니즘] 열띤 논의, 가열찬 논쟁

by 페페연구소 2019. 10. 2.
섹슈얼리티에 대한 열띤 논의가 급진주의 자유의지론 페미니스트들과 급진주의 문화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벌어졌고, 1982년 바너드대학교 섹슈얼리티협의회(Barnard College Conference on Sexuality)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 얼마 되지 않아서, 급진주의 자유의지론 페미니스트들과 급진주의 문화 페미니스트들의 차이가 현격하게 커지면서 바너드협의회는 없어졌다.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85-86쪽)

급진주의 페미니즘 진영 안의 뜨거운 논쟁이었던 주제들 중 첫째, 포르노에 관한 논의를 다룬 부분에 위의 인용문이 나온다. 즉 급진주의-자유의지론 페미니스트들은 우리 사회에서 억압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일깨우기 위해서 여성들은 포르노를 볼 뿐 아니라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급진주의-문화 페미니스트들은 포르노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여성의 인격을 훼손하는 것이므로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 인용문에 나온 1982년 바너드협의회는 바너드대학 내의 여성 연구소에서 주최한 컨퍼런스였다고 한다. 섹슈얼리티 특히 포르노그래피의 논의로 인해 그 때 당시의 가장 논쟁적인 컨퍼런스일 것으로 예상되었고, 바너드대학 여성 연구소의 컨퍼런스 준비 위원인 교수들 다수가 준비를 그만두었으며, 전날까지도 각종 단체들의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 참고). 그래서 개최된 그 컨퍼런스는 결국 서로 다른 상반된 주장들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고 절대 그 두 입장이 협의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한 협의회였고, 그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Feminist Sex War'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고 한다. 

결국 그 협의회에 모였던 페미니스트들은 서로가 절대로 협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협의회는 없어졌으며, 그로부터 여러 섹슈얼리티 문제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은 주욱 싸우다가 결국 제3의 물결 시대로 넘어갔던 것이다. 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때는 그토록 상반된 주장들에 눈이 휙휙 돌아가며 읽었는데, 여러 번 읽다보니 이제는 이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들이 눈에 들어온다. 1982년 미국에서는 대학의 여성 연구소에서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저런 가열찬 논쟁을 했었구나. 그러다면 지금 2019년 대한민국에서 저런 가열찬 페미니즘의 '논의'의 장은 어디인 걸까. 여성학회일까, 아니면 어떤 페북이나 트위터일까. 어디일까.

저자는 1982년의 바너드협의회 이후 2000년대로 훅 뛰어서 캐린(KaeLyn)이라는 여자의 블로그에 게시된 글과 그 댓글들을 인용하고 있다. 찾아보니 이마저도 2008년의 게시물 인용이라 지금으로부터 무려 11년 전의 온라인 논의이다. 저자는 아마도 수두룩하게 존재할 온라인 논의의 장 중에서 왜 특히 캐린의 블로그를 선택하여 이 책에 인용했는지 아무 설명을 하고 있지 않아, 이 블로그의 논의가 어떤 대표성을 띠고 있는지는 전혀 확인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블로그는 기술적인 문제점으로 인해 현재 문을 닫은 상태인데, 최근 몇 년간 게시물만 아카이빙 되어 있어서 2008년 게시물은 찾을 수가 없으며, 페북그룹으로 옮겨갔다고 공지가 되어있어서 방문해보니 '가열찬 논의'의 장 같지는 않아 보인다. 

어쨌거나 저자는 캐린의 블로그 글을 인용하면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몇몇 가열찬 의견 교환이 있었으나, 그 글에 대한 코멘트는 논쟁적(argumentative)이거나 적대적(hostile)인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예의바르고(civil), 서로 존중하며(respectful), 사려 깊은(thoughtful)이었다.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87쪽)

아마도 저자가 그 특정 블로그 글을 인용했던 것은 바로 이 말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하게 된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적대적으로 공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의바르고 civil, 서로 존중하며 respectful, 사려 깊은 thoughtful 태도로 의견 교환을 하는 것. 나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을 욕하는 것은 하기 쉽다. 그냥 욕을 하면 되니까.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하면서, 합리적인 반박의 이유를 찾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적대적이고 공격적으로 서로 다른 페미니스트들을 욕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나만큼은 그 상대조차도 존중하며 이해하려는 태도로 대하고 싶다. 적어도 나에게 로즈메리 통이라는 한 명의 지원군은 있는 거니까. 나에게도 든든한 뒷배경이 있다는 사실에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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