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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오늘의 구절

[1장. 자유주의 페미니즘] 그렇게도 다른 전업주부 노릇

by 페페연구소 2019. 9. 25.
예를 들어 아프리카계 미국인 정치 이론가이자 활동가인 앤절라 데이비스(Angela Davis)는 아프리카 출신 여성 상당수가 전업주부 역할을 억압적이기보다는 해방적인 것으로 경험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아프리카 출신 여성들, 특히 빈곤층은 그들의 노고를 "이름없는 문제점[전통적인 전업주부 역할에 대한 특권층 (백인) 여성들의 불만족]"과 바꿀 수 있다면 너무나 행복해할 것이라고 앤절라 데이비스는 강조했다.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58쪽.)

각 챕터의 끝부분에 실려있는, 해당 이론에 대한 비판점들 중 한가지이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인종, 계층, 성적 지향의 문제를 잘 다루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많은 여성들과 남편이 돈을 잘 벌어오기 때문에 돈을 벌 필요가 없는 핑계로 전업주부로 사는 여성들에게 전업주부 역할이란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때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여성들은 주로 당시 백인보다 가난하게 살았던 흑인 여성들(책에서는 피부색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것을 지양하는 의미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이기 때문에,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계층의 문제, 인종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계층에 따라 그렇게도 다른 전업주부 노릇이라니. 나에게는 그렇게도 지겨운 일이 다른 어떤 누군가에게는 그렇게도 해방적인 일이 될 수도 있다니. 그리고 그렇게 가르는 것이 이 경우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본의 유무에 따른 계층의 여부라니. 언젠가 교사인 나의 지인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두 아이를 기르며 힘겹게 직장생활을 지속해온 그녀는 전업주부로 사는 것이 진심으로 부럽다는 말을 그야말로 진심을 담아 했었다. 아 그렇구나. 나에게는 이렇게 탈출하지도 버리지도 그렇다고 푹 빠져들지도 못하는 이 삶이 누군가에게는 해방적인 것일 수도 있구나. 정말 사람은 다 다르구나. 여자들이라고 절대로 하나의 단일한 계층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일깨워주었던 대화였고, 그 장면은 지금 이렇게 이 책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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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타임 워킹맘도 아니고 풀타임 전업주부도 아닌, 파트타임 워킹맘이고 파트타임 전업주부인 나는 그 어느 쪽에서도 나의 정체성을 찾지 못했다. 이제는 그 어느 집단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는 것을 포기한 지 오래다. 그런데 둘째아이가 딱 저만했을 때의 나의 모습을 똑같이 재현한 이미지가 있다. 저 여자가 누구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어떤 형태로 어떤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든간에, 딱 저 장면은 칭얼대는 아기를 안고 어르고 달래며 동시에 내 일도 하려고 애쓰다가 이것도 저것도 안되어 좌절했던 그 시절의 나의 모습이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실패는 그야말로 남성들을 가사노동의 영역으로 불러들이지 않은 채 여성들을 직장으로 내보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맞는 말일 것이다. 2019년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는, 그 일, 즉 남성들을 가사노동의 영역으로 불러들이는 일이 절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서 많은 여성들이 결혼도 자녀도 포기해야만 하는 사회가 되었다. 세상이 계속 이런 식이라면 나의 딸들에게도 결혼도 자녀도 포기하라고 나도 말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세상이 계속 이런 식으로 돌아가게 보고만 있을 수는 없기에 오늘도 뭐라도 애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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