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오늘의 구절

[1장. 자유주의 페미니즘] 메리 울스톤크래프트

by 페페연구소 2019. 9. 18.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여성들에게 가장 원했던 것은 인간다움(personhood)이었다. 그녀는 여성이 "이성을 멀리하고 남편이 즐겁기를 원할 때마다 남편의 귀에 듣기 좋게 딸랑이를 울려 대야 하는", "남성의 장난감, 그의 노리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다시말하면 여성은 단지 남성의 즐거움이나 행복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이마누엘 칸트가 말한 바와 같이 여성은 그녀 자체로 목적이며, 자기결정의 능력 속에 그 위엄성이 들어 있는 합리적 행위자다.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24쪽)

1979년 John Opie의 작품. 캔버스 유화. 영국 런던의 National Portrait Gallery 소장.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Mary-Wollstonecraft에서 퍼옴.

 

두둥~! 서구 페미니즘의 역사상 가장 처음 등장한 페미니즘인 자유주의 페미니즘에서도 제일 처음 등장한 페미니스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1759년부터 1797년까지 살았던 사람이라고 하니, 지금으로부터 222년 전에 살았던 페미니스트인 셈이다. 검색해보니 우아한 초상화가 가득 뜬다. 이 여자였구나. 여성의 지위라고는 없었던 시대에, 교육받았지만 가난한 집안 출신 여성으로서, 글을 쓰는 일로 먹고살았을 뿐 아니라, '여성의 권리 옹호'라는 페미니즘의 고전 중의 고전을 써서 유명해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율적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상을 여성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는, 그 때 당시 선구적이었던 주장을 했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여성들에게 가장 원했던 것이 인간다움(personhood)이라고 했다. 여성에게 "남성의 노리개", 남성의 성적 대상물, 남성의 신체적, 정서적 욕구를 채워주기 위한 존재로 살지 말고, 여성 그 자체로 하나의 인간으로 살라고 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유주의의 정신을 이어받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주장이기에, 여성은 남성을 위한 도구나 수단이 아니라 "그녀 자체로 목적"(an end in herslef)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 이 페미니스트가 이 주장을 했던 시대로부터 222년이 지난 지금 나는, 타인을 위한 수단이 아닌 나 자체가 목적인 그런 존재로서의 삶을 과연 살고 있을까? 두 아이를 키우며 남편과 함께 살고 시름시름 짬짬이 일을 하는 구조로 살고 있는 지금의 나는, 과연 나 자체로 목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주장을 따라 "남성의 즐거움이나 행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녀 자체로 목적"인 삶을 살려면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그런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도 사실 아빠 없는 아이를 하나 키워보니 너무 힘들어서 두번째에는 결혼한 것이 아닐까?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위키피디아 참고) 그렇다면 페미니스트의 삶은 항상 그의 말이나 글과 일치해야만 하는 것인가? 페미니즘 말고 다른 어떤 학문분야의 학자들에게 우리가 그 학자의 글과 삶이 일치해야 한다는 잣대를 들이대기나 하는 것인가?

'오늘의 구절' 섹션은 구구절절 와닿는 페미니즘 책의 한 구절을 뽑아보고 거기에서 힘을 얻어볼까 하고 시작한 일인데, 번역할 때 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역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만 또 생겼다. 알면 알수록, 살기는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ㅎ.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