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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오늘의 구절

[1장. 자유주의 페미니즘] 아 베티 프리던~~~

by 페페연구소 2019. 9. 24.

마치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베티 프리던의 책을 읽고 거기에 푸욱 빠졌던 적이 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 거기에서 조금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그의 이론이 너무도 매력적이어서 지금까지도 일종의 신념처럼 믿는 것도 있을만큼. 그런데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5판에서는 베티 프리던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그를 알고 있는, 적어도 첫번째 저서 '여성성의 신화'(The Feminine Mystique)는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독자로 가정하고 베티 프리던 파트를 쓴 것 같다. 그래서 1963년 저서 '여성성의 신화'와 그로부터 18년 후인 1981년 저서 '제2의 단계'(The Second Stage), 그로부터 12년 후인 1993년 저서 '시대의 샘'(The Fountain of Age)에서 베티 프리던의 주장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서술하면서, 2판까지만해도 '여성성의 신화'에 나온 주장의 서술에 치우쳤던 것을 균형있는 서술로 바꾸어놓았다.

그래서 이미 베티 프리던의 '여성성의 신화'를 읽어보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내가 읽어보지 못한 그 이후의 저서들에서 그의 주장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알려주는 부분이라 유용했지만, 만일 베티 프리던을 처음 들어보는 독자라면 그가 대체 무슨 말을 한 사람인지 혼동스러울 수도 있는 서술인 것 같다.

1960년대(추정) 미국 여성잡지의 대걸레 광고. 구글검색 이미지.

 오랫동안 여성잡지의 편집자로 일했던 베티 프리던은, 이상하게도 그녀 주변의 여자들의 알 수 없는 우울증 문제를 접하게 되고, 본격적으로 그 문제를 탐구하기로 작정한다. 많은 여성들을 인터뷰한 결과를 '여성성의 신화'라는 책으로 냈는데, 요약하자면, 고학력 중산층 백인 기혼여성들이 알 수 없는 우울증을 겪는 것은, 그 여성들이 대학교육을 받고도 경제활동을 통한 자아실현을 하지 않고 집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며 살고 있는 데에서 오는 좌절감 때문이라는 내용이다. 그 알 수 없는 우울증을 베티 프리던은 '이름없는 문제'(the problem that has no name)이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그 이전까지 그 어느 심리치료사도 그 문제에 대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 

베티 프리던의 책 제목이 '여성성의 신화', 즉 'Feminine Mystique'인 것은 온 사회가, 그리고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여성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허구의 신념에 묶어놓기 때문일 것이다. 오랫동안 여성잡지의 편집자였던 베티 프리던은 특히 자본주의와 결합한 미디어에서 여성들에게 여성성이라는 고정관념을 어떻게 강화하고 있는지를 잘 분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옆의 대걸레 광고와 같은 것. 어떻게든 여성들을 집 안에 묶어두기 위해 신제품 대걸레 따위를 만들고, 그 신제품 대걸레를 사용하는 것이 어떻게 그 여성의 품격을 높여주며 그 여성을 훌륭한 주부로 만드는 일인지를 암묵적으로 혹은 명시적으로 여성 뿐 아니라 남성을 포함한 온 사회에 주입하는 것. 그런데 사실 이와 유사한 컨셉의 광고는 2019년 대한민국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끊임없이 쏟아져나오는 특히 주방 가전제품들. (이와 관련된 자세한 얘기는 다음 기회에...)

그래서 베티 프리던은 여성들에게 집 밖으로 나가 일할 것을 촉구했다. 적어도 1963년 '여성성의 신화'에서는. 

베티 프리던은 그녀보다 앞선 해리엇 테일러와 존 스튜어트 밀과 마찬가지로 어떤 계급 혹은 어떤 인종, 민족이든지 남성들을 가사 노동을 분담하는 데 불러들이지 않은 채, 또 이미 공적 영역에서 고되게 일하고 있던 백인 노동자계급 여성들과 유색인종 여성들의 상황을 언급하지 않은 채 부르주아 백인 여성들을 직업 세계로 내보냈던 것이다.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43-44쪽.)

다행히도 베티 프리던은 요절한 혹은 스스로 일찍 생을 마감한 어떤 페미니스트들과는 달리 오랫동안 페미니스트로 계속 잘 살면서, 여러 권의 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페미니즘이론은 결코 단일하다고 할 수도 없으며, 고정불변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 같다. 한 사람의 페미니스트, 동일한 그 사람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다른 주장을 하는지를 이 책에서 이야기해주고 있으니. 

'제2의 단계'와 '시대의 샘'은 번역본이 없지만, '여성성의 신화'는 오래 전부터 번역본이 존재하고 있다. 페미니즘의 고전 중의 한 권이니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고 생각해보고 고민하고 변화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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