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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2019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여성 쾌락

by 페페연구소 2019. 8. 30.

늘 그렇지만 이번 영화제에서도 영화를 고른 기준은 일단 프로그램을 주욱 보고 관심이 가는 것들을 여러 개 뽑아놓은 다음에, 시간표를 확인하며 시간이 맞는 영화들을 고르는 방식이었다. 아주 예전에 예매해두었기 때문에 사실 무슨 영화인지 잊어버려서, 가는 동안 영화 설명을 잠깐 확인해보았다. 잠깐 확인한 이 영화의 인상은 '아, 여성의 몸에 대한 서양 다큐멘터리구나' 였다.

여성의 몸에 관한 쌈빡한 다큐들을 본 적이 있다. 애플 아이튠즈 무비에서만 팔아서 한국어 자막이 없었어도 학생들과 꾸역꾸역 같이 보았던 'Miss Representation'과 넷플릭스에 떠서 우연찮게 보았다가 모두의 학교 영화토크에서 함께 본 'Embrace'이다. 'Miss Representation'은 다큐는 나의 관심사와 꼭 맞는 것이 아니라면 지루한 것이라는 나의 편견을 확 깨준 다큐였다. 여성과 남성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 실제 뮤직비디오나 광고나 영화의 장면들, 그 밖의 이미지들을 적절하게 섞어서 만든 이 영화는 여성의 몸이 미디어에서 얼마나 억압적으로 그려지고 있는지를 확실히 깨닫게 해주는 훌륭한 다큐였다. 'Embrace'는 더 재미있고 눈물겹기까지 했다.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날씬한 근육질 몸매가 되었던 사진을 'Before'로, 다시 살찐 사진을 'After'로 페북에 올려 (나만 몰랐던) 전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던 감독이 자신에게 사연을 보낸 여성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찍은 다큐이다. 몸의 해방과 관련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는 장면들도 있었고, 여러 여성들의 스토리도 강력했다. 대개 어떤 영화가 사람들에게 눈물을 쏟게 하는 포인트가 정해져 있어서 대부분의 관객들이 비슷한 장면에서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면, 이 영화는 이상하게도 상영되는 중간중간에 아무데서나 보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훌쩍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눈물 쏟은 포인트와도 달랐고, 여러 명이 전부다 눈물쏟는 포인트가 달랐던 놀라운 영화였다. 

(여기서부터 약간의 스포 있음. 이 영화 공식 홈피에 있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모르고 가서 보면 더 좋을 것도 같음.)

아무튼 그 두 영화들을 기억하면서 이 영화 '#여성 쾌락'도 그런 종류의 영화겠거니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보러 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정말로 용감한 여성들 다섯 명이 나왔다. 처음에는 어디서 많이 들었던 종류의 피해 증언인 듯 했지만, 이 여성들의 이야기가 깊어지고 각자의 개별적인 삶의 맥락을 알게 되면서 그 여성들의 이야기는 흔한 종류의 또 다른 어떤 피해 정도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가장 자유분방할 것 같은 뉴욕의 브루클린에 살지만 극우 유대교 공동체에서 살고 있어서, 17의 나이에 딱 한 번 본 남자와 결혼을 강요당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섹스를 하고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은 데보라 펠만. 런던에 사는 무슬림 가정에서 자라 7살의 나이에 여성 성기 절제라는 끔찍한 일을 당해야 했던 레일라 후세인. 자신의 질을 석고로 본을 떠서 다양한 크기의 다양한 예술작품을 만들고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서 누구나 자신의 질을 본으로 떠서 만들 수 있게 데이터를 공유한 죄로 경찰에 연행되어 가고 재판을 받아야만 했던 일본 여성 로쿠데나시코. 19세의 나이에 헌신하기로 하고 수녀원에 들어갔다가 신부에게 여러 차례 강간당했던 독일 여성 도리스 바그너. 어렸을 때부터 여성차별이다 못해 여성혐오적인 가치관을 주입받으며 살아야 했던 인도 여성 비티카 야다브. 

위 이미지들은 https://www.femalepleasure.org 에서 퍼옴.

저 여성들의 개별적인 삶의 이야기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지만, 사실 나의 삶과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유대인, 소말리아인, 일본인, 독일인, 인도인 여성들의 이야기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지만, 전세계적인 여성의 이슈, 이 여성들의 개별적인 삶의 이슈는 바로 나의 이슈와도 연관되어 있는 것이었다.

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고 어느 날 끌려가서, 강제로 다리를 벌린 채 성기 일부분을 칼로 도려냄을 당해야 했던 레일라의 이야기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레일라는 그것은 여성 성기 절제라고 불려서는 안되며, 아동에 대한 성폭력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그것이 올바른 명칭이라고, 가슴을 치며 말하고 있었다. 아... 별 생각 없이 이전 번역을 따라 genital mutilation을 여성 할례라고 번역했었다. 곧 발간되는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에서. 아... 물론 어떤 번역은 그 단어를 대체할 다른 단어가 존재하지 않아서, 여성 억압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냥 그런대로 번역한 것들도 있지만, 왜 여성 할례라는, 뭔가 민족성을 암시하며 그 민족 고유의 문화로 존중받을 수 있는 것 같은 그런 용어를 아무 생각 없이 썼을까. 옮긴이 주석으로, 이는 명백히 국가 혹은 민족 혹은 공동체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아동 성폭력이라는 주석을 달아도 마땅한데. 내가 번역하는 책에 드러나는 여성들의 삶에 나는 얼마나 책임의식을 느끼며 그 책을 번역했는가. 레일라의 이야기를 보며 정말로 부끄러워졌다. 

나의 기대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게 해준 영화 '#여성 쾌락'은 고유의 홈페이지도 갖고 있다. 여성영화제 기간 동안 한 번 더 상영되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할 궁리를 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이 영화에 나온 저 다섯 명의 여성들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개인적인 변화와 사회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무언가를 모두들 하고 있었다. 나도, 이미 인쇄 들어간 책에는 어쩔 수 없지만 다음번 인쇄에는 genital mutilation은 여성 할례가 아니라 적어도 여성 성기 제거?절제?로 번역하고, 옮긴이 주석을 넣어볼 수 있도록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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