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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오늘의 구절

[4장. 미국의 유색인종 페미니즘(들)] 자신을 위해 말할 수 있도록

by 페페연구소 2019. 11. 20.
미국의 유색인종 페미니즘들에 관해 독립된 장을 쓴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한 유색인종 여성 집단들의 고유한 억압과 가부장제 경험들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유색인종 여성들이 그들 자신을 위해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할 필요성이 점점 증가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자신의 관심사를 정의할 권리뿐 아니라 행위주체성을 확인하며, 또한 그들 사이에서 그들에게 실행 가능한 해결책들을 찾아내도록 하기 위함이다.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229쪽)

4장과 5장은 특별히 유색인종인 듯 보여지는 티나 페르난데스 보츠가 썼다. 백인 여성으로서 자신이 다른 인종 여성들의 경험을 잘 대변하지 못했다면 사과한다고 2판에 썼던 로즈메리 통 교수가 4판부터는 티나 보츠 교수를 섭외해서 유색인종여성 페미니즘 부분만 집필을 맡겼다. 2판에서는 '복합문화' 페미니즘이라는 장이 있었고, 4판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이번 5판에서는 미국 내의 유색인종여성 페미니즘과 미국 밖의 전세계적 유색인종여성 페미니즘을 독립된 두 개의 장으로 다루었다. 잘한 일이다. 더 많은 인종의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려야 하는 것이니까.

사실 유색인종 페미니즘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 전까지 열심히 책 속의 페미니스트들과 보조를 맞추어가며 걸어가다가 갑자기 '너 색깔있는 여자니까 이제 저쪽으로 가서 너네끼리 놀아' 하고 밀려난 느낌이랄까. 영어로는 Women-of-color feminism(s) 이다. 처음엔 '유색인종 여성 페미니즘'으로 번역했다가, '여성'과 '페미니즘'의 의미가 겹친다는 편집부의 의견을 수용하여 그냥 '유색인종 페미니즘(들)'로 수정하였다. 아무튼 갑자기 나보고 color가 있다고 하는 느낌이라 그닥 기분이 좋진 않았다. 백인들이 디폴트고 나머지는 다 유색으로 취급하는 관점이 저 용어 같은데, 사실상 백인들도 컬러가 있지 않은가. 인간의 몸에는 피가 돌고 있기 때문에 혈색이란 것이 있다. 지금 이 글의 배경색이 되는 하얀 화면이 white이고, A4용지의 흰색이 white이지, 백인들의 얼굴색은 그런 흰색이 아닌데도, 자신들을 white로 칭하다니. 게다가 흑인들도 피부색이 천차만별인데 전부다 black으로, 나는 절대로 피부가 노란색이 아닌데도 분류상으로는 yellow에 들어가야 하다니. 

그러면서 찾아보니 '인종'이라는 개념 또한 '젠더'와 같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챕터의 번역을 위해 찾아본 누군가의 유투브에서는 어떤 히스패닉 Hispanic 여성이 왜 내가 내 조상들이 식민지배를 받을 때 썼던 언어로 규정되어야 하는지 질문하고 있었다. 그 유투브를 보고 아 그렇구나 싶었다. 히스패닉, 치카나라는 용어 자체도 철저하게 유럽출신 백인중심 용어였구나. 그 말이 맞다. 만일 내가 어디 가서 내 조상들이 일본에게 식민지배를 받을 때 썼던 언어인 일본어를 중심으로 규정된다면 나도 그 여성과 같은 황당한 기분일 것 같았다. 

어쨌든... 이 챕터를 쓴 이유를 이 챕터의 저자인 티나 보츠가 위와 같이 밝히고 있다. 유색인종 여성들이 그들 자신을 위해 말할 수 있도록 하고, 자신들의 관심사가 뭔지 정의할 수 있도록 하고,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실행가능한 해결책을 찾아내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고 있다. 그래, 이 챕터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피부색이 어떻든, 어디에 살고 있든, 인종이란 개념으로 정의되어지는 상황에 놓인 여성들 누구나가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이 정도면 훌륭한 접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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