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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경계넘기를 가르치기

빠져나가는 것은 해답이 아니다 [벨훅스, 경계넘기를가르치기]

by 페페연구소 2022. 3. 7.

흑인성과 인종차별에 관한 챕터를 읽을 때면 무언가 건너뛰고 싶은 생각이 솔직히 조금은 들었다. 여기는 미국도 아니고 나는 흑인도 아니니, 나와 상관없겠지 하는 생각. 하지만 나 역시 미국에서 인종적 소수자인 한국인 유학생으로 살아보기도 했고, 한국에서는 한국인으로서 인종적 지배자 집단에 속하기도 한다. 또한 벨 훅스가 말하는 흑인성에 관한 이야기는 교차성이란 관점에서 나의 어떤 특정한 위치들에 대입하면 또 들어맞는 경우도 있다.

이 챕터의 앞부분에서는 흑인과 백인 여성의 연대가 어려웠던 역사적인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여러가지로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되어 페미니즘 진영에서 흑인들이 빠져나오는데, "빠져나가는 것은 해답이 아니다"라고 벨 훅스는 말한다. 페미니즘이 흑인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흑인이 빠져나가면, 흑인 입장에서 흑인이 원하는 것을 대변할 사람이 페미니즘 진영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그렇게 흑인은 더욱 배제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생기기 때문에, 결국 그 문제에 공범이 된다고 말한다.

나에게도 이래저래 마음에 들지 않아서 빠져나오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문득 생각이 났다. 이것도 저것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딱히 빠져나오는 것도 귀찮으니 적당히 모른척 발만 담그고 있자고 생각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벨 훅스는 분명히 말한다. "빠져나가는 것은 해답이 아니"라고.

누구에게나 어딘가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미 빠져나왔을지도 모르겠다. 더 나은 곳, 내가 속하기 더 편한 곳을 찾아서. 하지만 벨 훅스는, 빠져나가지 말고, 그 자리에 남아, 목소리를 내라고, 그래야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의 말이라서, 그 한 문장 앞에서 한참을 멈춰서 있게 된다. "빠져나가는 것은 해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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