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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요즘 읽는 책들/기타

사디즘의 어원 사드 후작 [안드레아 드워킨. 포르노그래피]

by 페페연구소 2020.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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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오래된 책을 집어들었을 때 호기심이 갔던 것은 사디즘의 어원이라는 사드 후작에 관한 챕터가 있어서였다. 사디즘이나 마조히즘을 실천해본 적도, 그에 관해 공부해본 적도 없지만, 용어는 들어서 알고 있던 터라 궁금하기는 했다. 그런데 이 책의 사드 후작 챕터를 읽으며 구역질과 욕과 토가 올라옴을 느꼈다. '박사'든 '갓갓'이든 '와치맨이든' n번방의 창시자가 후세에 길이길이 칭송되며, 다음세대의 모든 문학작품에 등장하고, 사회 문화 교과서에 등장하며, 시대를 잘못 만난 훌륭한 인물로 추앙되는 느낌이 이런 거랄까. 1700년대-1800년대를 아우르며 살았던 사드 후작은 그 시대의 '박사'고 그 시대의 '손정우'였다. 젠장. 

여자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성학대, 성착취, 강간, 고문, 살인 등 할 수 있는 모든 나쁜 짓을 할 수 있는 한 여러 여자에게 했던 인물이며, 그 스토리들을 글로 쓴 인간이었다. 그런데 더 기가 찬 것은 후세의 사람들 그것도 유명한 철학자 문학가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사드 후작의 그 가학적인 스토리를 담은 책을 거의 찬양하다시피 한 것이 이어져내려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그래서 사디즘이라는 말의 어원이 되기까지 하다니. 이 뒤에 "지적인 아첨꾼"을 등에 업고 있다는 말이 머리에 와 박힌다. 치욕적이고 굴욕적이다. 사드 후작에게 학대당하고 고문당하고 죽임당한 여성들과 내가 잘 분리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 모두는 김지은이다. 우리 모두는 박원순씨 사건 피해자다. 이 사회에 살고 있는 여성이라면 모두가 같은 처지일 수밖에 없다. 그저 운이 좋아서 박씨나 안씨같은 상사를 만나지 않았고, 운이 좋아서 디지털 성범죄에 걸려들지 않았고,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을 뿐이다. 분노하기도 힘들고 지치는 요즘, 이 책을 읽는 것이 나의 삶에 어떤 힘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하다, 안드레아 드워킨의 입법 사실을 찾아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안드레아 드워킨은 이 구역질나는 사실을 자세하게 밝혀가며 책에 써서 여자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이 책을 쓰고 나서 몇 년 후 캐서린 매키넌과 같이 포르노 금지 입법을 했다고 한다. 구역질나는 이 사회의 포르노적 관점과 행태가 그저 토 하기 위함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었다. 좀 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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