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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페스터디/Still Failing at Fairness

착한 여자아이 신화 - 점점 침묵하는 여자아이들

by 페페연구소 2020.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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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있다. 그 누구를 대상으로 강의를 하든, 어릴 때 여자라서 들었던 말이 있는지 물어보면 나오는 말들이다. 나대지 마라, 여자애가 왜 그렇게 목소리가 크냐 등등. 이런 말들은 학교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개념없이 여자아이들에게 던져지는 말들이다. 특히나 학교에서 선생님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 한 마디는 여자아이들의 삶에 치명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며칠전에야 들었다. 중학생 딸아이가 남들 앞에서 하는 발표를 끔찍하게 싫어하는데, 그 기원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는 것을. 영어시간에 영어로 뭔가를 발표했는데, 선생님이 자기 말을 못 알아들었는지 목소리가 작았는지 암튼 못 알아들으면서 뭐라고? 뭐라고? 하면서 여러번 같은 말을 시키며 자기 앞에까지 점점 가까이 왔고, 아이는 그게 너무도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는 것. 지금 중3인 아니가, 초3일 때의 그 일을 "끔찍했다"고 표현했다. 그 이후 거의 절대로 수업에서 발표 따위 하지 않았고, 이 책에 나오는 여자아이들처럼, 발표하지 않고도 학교를 잘 다닐 수 있는 전략도 아마도 혼자 몸에 익혔으리라.

이미 발표를 끔찍하게 여기게 된 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아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슬펐다. '아니야 그래도 넌 잘 할 수 있어' 라는 뻔한 말을 하자니, 그 말에는 발표를 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가정이 들어가 있어서 발표를 못 하는 자신에 대해 영원히 열등감을 느낄 것 같고. 아니면 '그래 못 하겠음 안 하면 되지' 라고 하면 얘는 영원히 남들 앞에서 말하는 일 따위는 자기 영역이 아니라고 여기고 살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해줘도 안 될 것 같고. 그래서 그냥 아이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그랬구나 그 선생님 왜 그랬다니 그랬구나' 정도의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초등학교 5학년 회장선거에서 앞에 나가서 '제가 반장이 되면' 스피치를 제발 하고 오라면서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민트 초코 빙수를 내걸고 아이를 괴롭게 만들었던 나의 흑역사를 반성했다. ㅠㅠ 그렇게 좋아하는 민트 초코 빙수를 엄마에게 얻어먹기 위해 그렇게 싫은 일을 해야 하다니, 아이가 얼마나 괴로왔을까. 엄마가 그 일을 반성했다고 아이에게 언젠가 말해주어야겠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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