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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페연구소는

[복음과 상황 382호 커버스토리] 희망을 발견하게 하는 힘, 배움

by 페페연구소 2022. 9. 3.

기독교 잡지 '복음과 상황' 382호, 2022년 9월호 커버스토리로 제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어느 날 이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벨 훅스의 신간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벨 훅스, 당신과 나의 공동체'를 찾아 읽다가 거기에 실린 저의 역자 서문을 보고 페페연구소를 찾아보게 되었다는 분이 있었습니다. 블로그와 브런치, 제가 출간하거나 번역한 다른 책들과 그 책의 서문들도 꼼꼼히 읽어보시고, 왜 저를 인터뷰하고 싶은지를 차분히 적어 보내준 이메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복음과 상황'의 강동석기자님은 저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질문들을 가득 가지고 와 주셨습니다. 그래서 인터뷰하는 그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또 다른 배움의 장이었습니다. 

인쇄본과 온라인판은 약간 사진이나 편집이 다르지만, 어쨌든 커버스토리는 '복음과 상황'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열람 가능합니다. 좋은 질문들 덕분에 제가 하는 일, 저의 삶, 저의 생각 등이 잘 표현되어 있는 기사라서 쑥스럽지만 공유합니다. 

혹시 링크가 바뀔까봐 아래에 전문 복사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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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호 커버스토리] 평생교육학 연구자 김동진 ‘여성주의 교육 연구소 페페’ 대표

《벨 훅스, 당신과 나의 공동체》는 ‘세상을 바꾸는 배움’에 대해 논한다. 희망 없어 보이는 갈등 사회, 가르침과 배움이 있는 ‘공동체’가 희망의 원천이라는 이 책을 읽다가 역자 서문(‘공동체, 가장 급진적인 실천’)에 꽂혔다. ‘내 삶의 공동체’가 유학 시절 한인교회였다는 고백, 책에 자극받아 강의실에서 공동체에 관한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졌다는 사례가 인상 깊었다. 알고 보니, 커버스토리 ‘배움의 재발견’에 맞춤한 평생교육학 연구자였다.

그가 운영한다는 1인 연구소 ‘여성주의 교육 연구소 페페(Feminist Pedagogy)’(이하 페페연구소)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82년생 김지영과 76년생 김동진’ ‘텔레그램 n번방 어쩔까’ 등의 제하로 연재된 글들을 어느새 새벽 깊도록 읽고 있었다.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과 《성인교육의 의미》(공역) 등을 번역하고, 《N번방 이후, 교육을 말하다》(이상 학이시습)를 기획했다는 이력에도 눈길이 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페페연구소 김동진 대표를 7월 28일 서울 광화문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한 감리교회 권사인 김 대표는 서울대 교육학과에서 학사·석사학위를 받고, 〈한국 직장 여성들의 성공의 의미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미국 조지아대에서 박사학위(평생교육 전공)를 받았다. 그는 ‘평생교육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여성주의 교육학(페미니스트 페다고지)’을 실천하고자 노력해오고 있다. 평생교육학이 말하는 ‘교육’의 의미, 우리에게 ‘배움의 공동체’가 필요한 이유, 신앙 이야기 등을 물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페페연구소는 어떻게 설립하게 되었나. 그간 해온 활동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다면 나눠달라.

박사학위를 2008년쯤 받았지만, 그동안 육아하면서 시간강사 일만 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보내고 빨리 강의만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여성주의 교육’ 콘텐츠를 하고 싶어도 같이할 사람이 없더라. 평생교육 전공자 중 페미니스트가 별로 없기도 했고, 페미니스트 중에도 교육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는 사람이 드물었다. 일단 시작해보자는 마음에서 1인 연구소를 열었다. 어느 기혼 페미니스트 여성이 썼던 책의 문구에 꽂힌 이유도 있다. 기혼 여성은 배우자에게 “너 때문에 애 키우느라고 내가 이렇게 됐잖아!” 하기 쉽고, 상대방은 “내가 처자식을 먹여 살리느라고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아?” 하기 쉽다. 서로 피해의식 갖지 않고, 결혼생활을 잘 이어나가려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1인분의 자립이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영어 책 읽기 공부모임 페페스터디로 연구소 활동을 시작했다. 페미니즘 교육 일을 이어가려면 영어 책을 읽어야겠더라. 번역된 게 별로 없어서. 부끄럽게도 박사학위를 받은 뒤로는 대학 강의에 필요한 만큼만 읽고 살았다.(웃음) 그동안 페미니스트 페다고지 문헌이 어마무시하게 많이 출간되었더라. 막연히 혼자 읽기는 힘드니 모임을 연 거다. 생각보다 많은 분이 신청했고, 웬만한 대학원생보다 열심히 읽어와서 감동받았다. 가장 최근에는 이 모임으로 필진을 공개 모집해서, 나까지 포함하여 8명이 ‘페미니스트 페다고지’ 공저 작업을 하고 있다.

《N번방 이후 교육을 말하다》 작업도 기억에 남는다. N번방 사건이 터지고 절망스러운 시기였는데, ‘추적단 불꽃’을 비롯해 페미니스트 청년, 교사, 문화예술인 등 저자 19명과 좌담을 진행한 과정 자체가 큰 힘이 되었다. 출간 후 2021년 초 온라인 북토크를 열었고, 페미니즘 대중서를 읽는 후속 독서모임을 이어갔다. 이런 모임이 필요한 삶의 단계에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더라. 주변에 페미니즘을 아는 무리도 없고, 지지 집단도 없는 상황에서 페미니즘 대중서 읽기 모임에 참여하는 것은 이분들에겐 새로운 빅스텝이었다. 누군가에겐 ‘다 아는 이야기’일 수 있는 책 한 권에 인생을 바꾸는 힘이 있음을 깨달았다.

- ‘평생교육’ 하면 문화센터, 학점은행제, 자격증 공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평생교육학’의 기본 개념들을 간단히 설명해준다면.

크게 세 가지를 언급할 수 있겠다. 평생교육학에서는 국가에서 인정한 학력이 나오는 학교교육은 ‘형식교육’이라는 말로 구분한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보면, 문화센터·평생학습센터·주민센터·도서관·박물관 등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과 동네 사설 가죽공방의 원데이 클래스 등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학력이 주어지지 않지만 가르치는 사람이 다소 뚜렷하게 구분되고, 비용도 가끔 발생한다. 이처럼 학교 아닌 곳에서 배우면 모두 ‘비형식교육’으로 분류한다.

‘무형식학습’은 학습 범위를 많이 확장하는 개념이다. 흔히 누가 연애하다 헤어지면 “야, 괜찮아. 사람이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거야” 같은 말을 하곤 한다. 이때의 ‘성숙’이 평생교육이 말하는 ‘학습’과 유사하다. 우리가 ‘사귀고 헤어지는 과정을 통해 인생의 진리를 학습해야지’라는 의도로 연애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삶에 도움 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이런 부류 사람과 맞지 않구나’ ‘연애하는 데 돈과 시간이 많이 필요하구나’라든지. 일상 중 삶에 필요한 것을 새롭게 알게 되면 ‘학습/배움’(learning)이라고 부르자. 인생의 중요한 배움인데, 왜 학습을 꼭 학교에 앉아 지식을 주입받는 것으로만 봐야 하느냐는 말이다.

얼마 전 처음으로 제로 웨이스트 숍을 다녀왔다. 완전 신세계였다. ‘화장품을 덜어서 팔아?’ ‘100% 어성초라니, 가능해?’ 감탄이 절로 나왔다. 더 찾아보고, 제로 웨이스트 책을 읽으면서 지인들에게 내용을 공유했다. 무형식학습 개념으로는 작은 일상적 배움 하나도 배움이다. 이렇다면 평생교육학 연구 범위는 굉장히 넓어진다. 인생 모든 것이 연구 영역이니까.(웃음) “연구할 게 너무 많으니까 범위를 제한하자. 의도가 없었으면 학습이라 하지 말자”고 제안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런데 히말라야나 티베트 다녀온 분들이 말하지 않나. 그 여행이 인생의 가장 큰 배움이었다고. ‘인생의 진리 1번부터 3번까지 깨닫고 와야겠어!’ 선언하고 여행 간 것이 아니다. 학습 의도가 없었으니 학습이 아닌 것일까? 개념을 확장하면 살아가며 깨닫는 모든 일이 다 ‘배움’이 될 수 있다.

- ‘교육’이라고 했을 때 학교교육에 국한해 사고하는 경향이 짙다. 좋은 대학이나 좋은 직장에 가거나 커리어를 쌓는 등, 특정 목표에 도달하면 교육의 역할이 끝난다고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벨 훅스, 당신과 나의 공동체》를 보면, 교육을 수단으로만 여기지 말라고 지적한다. 우리는 항상 “지금을 즐기지 마. 다음을 위해 공부해야 해”라고 말한다. 중학교 때는 좋은 고등학교, 고등학교 때는 좋은 대학 가려고 공부한다. 좋은 대학에 가면 대기업 취업을 위해 배운다. 따지면 끝도 없다. 무척 안타까운데, 문화가 이렇게 돼버렸다. 벨 훅스는 ‘지금 여기의 배움’ ‘지금 여기의 삶’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말한다.

가르칠 때도 ‘잘 가르쳐서 뭐해. 어차피 교양과목이고, 학생들은 학점 따서 취업 잘하려고 듣는 건데. 대충 필요한 학점 채우게 하고 말지’ 생각할 수 있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교육을 수단으로 여겨서 강의실이 황폐화된다던 벨 훅스 말에 정말 동의한다. 지금 여기 강의실에서의 배움에 집중하면, 배움의 순간 자체가 즐거워질 수 있다. 평생교육 철학은 교육을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 데 있다. 삶의 필요에 의해 스스로 공부할 때 가장 잘할 수 있다.

표현도 바꿔야 한다. 우리는 수업을 ‘듣는다’고 말하곤 한다. 가르치는 입장이 돼야 수업을 ‘한다’고 말할까. 강의 들으러 간다니까 정말 듣기만 하고 있다. 평생교육 기본 철학은 학습자의 주도성을 믿는 것이다. 학습자가 잘 배우도록 교육자는 조금 도와주면 된다고 본다. ‘지식을 잘 가르치고 잘 전달해줘야 돼’는 기존의 학교교육 교육자 마인드다. 우리가 교육을 ‘받는다’고 표현한다. 그러니 ‘시키기’도 한다. 교육자나 학습자나 수업에 ‘참여하러’ 가는 문화가 형성됐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학생이 강의실에서 주체가 돼야 한다. ‘참여’하면서 배울 수 있다면, 그 순간이 즐겁지 않을까.

ⓒ복음과상황 정민호 

- 페페연구소 소개 글을 보면 “평생교육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여성주의 교육학(페미니스트 페다고지)을 공부하고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라 밝히고 있다. ‘평생교육 관점에서 보는 여성주의 교육학’이란?

평생교육적 관점에 페미니즘 관점이 더해진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파울로 프레이리가 학교교육 중심의 ‘은행저금식 교육’을 비판하면서 ‘문제제기식 교육’을 언급했는데, 이런 조류가 평생교육의 기본 관점이다. 어떤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은 여성주의적 지식·관점을 계몽주의적으로 주입하고 싶어 한다. ‘내가 옳고 네가 틀렸어. 그러니까 내 관점을 배워. 그대로 흡수해’라는 태도이다. 현대사회에서의 배움은 그렇지 않다. 평생교육 관점에서는 학습자가 스스로 잘 배울 수 있도록 돕는 게 교육자의 책무다. 여성주의 교육도 이 기본 관점을 따른다. 교육자도 학습자로부터 배울 수 있고, 학습자도 서로서로 배울 수 있다. 페미니스트 페다고지와 평생교육이 통하는 부분이다. 예전에는 교수자가 지식의 권위자고, 학습자는 이 지식을 잘 받아 먹어야 한다고 봤다. 사실 지식은 다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학습자도, 여성도 누구나 자기 삶의 지식을 만들어가는 주체로서 의미가 있고 그럴 권위도 있다. 이렇게 개념을 바꾸자는 것이 페미니스트 페다고지의 주장이다.

- 스물아홉에 페미니즘을 처음 만났다고. 이전까지 전혀 몰랐던 것인가.

전혀 몰랐다. 비슷한 자극이라곤 학부 시절 딱 한 번 있었다. 같은 과 여자 동기가 교양과목 ‘여성과 사회’를 같이 신청하자고 한 것이다. 재미없을 것 같아 안 하겠다고 했다. 선입견을 갖고 ‘인간 전체에 대해 배워야지, 왜 여성에 대해서만 배우지?’ 싶었다. 그런데 미국 유학을 갈 때 즈음 선배들도 그랬고, 같이 간 배우자도 여성 이슈를 공부해보라고 권했다. 마침 여성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연구한 석사논문을 쓸 때 내 논문에 여성주의적 관점이 없다는 것이 분석의 제한점이었기에, 그런 권고들이 귀에 들어왔다.

처음 접한 여성학 과목은 ‘Gender and Geography’(여성과 지리학)였다. 다양한 내용을 배웠다. 대학 캠퍼스 내 어떤 학과 건물의 위치, 건물 크기나 접근성 등을 보면 공간에서 그 세계의 권력관계가 드러난다. 사범대는 대체로 후문 쪽에 있다. 비탈진 학교라면 올라가야 하는 곳 혹은 꼭대기에 있다. 조지아대 여성학과 사무실 및 강의실도 가건물 같은 컨테이너 건물로, 캠퍼스 구석진 데 있었다. 서울대도 공대 건물은 굉장히 높고 크다. 그리고 환경문제를 논할 때 전통적으로 ‘mother nature’라면서 ‘어머니’를 ‘지구’로 비유한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정복·파괴해온 것이 인류의 역사인데, ‘여성=자연’으로 등치하는 일이 여성에게 얼마나 폭력적인 개념화인지 배웠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기숙사로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는데, 주변의 나뭇잎이 반짝거리던 장면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웃음) 새로운 세상을 만난 거다.

- 페미니즘과의 만남 이후 어떤 변화를 겪었나.

가부장제 사회에서 착한 여자로 살아온 몸의 습관 때문에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았다. 계속 불편하고 고통스럽기는 했다. 아는 것은 많은데 현실은 제한되어 있었으니까. 그래도 페미니즘이 있어서 긴 시간을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를 버티게 한 정신줄이었다.

페미니즘 덕분에 사회구조적 문제를 보게 되니까 개인을 덜 비난하게 되더라. 안 그랬으면 배우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고 비난하면서 계속 싸우기만 했을 수도 있었겠다. 두 아이 독박육아로 너무 힘들었으니까. 페미니즘을 통해 배우자를 가부장적으로 성장하게 만든 사회구조를 볼 수 있잖나. 다른 사람에게도 “왜 그 정도밖에 안 돼?” 비난의 화살을 돌리거나,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나 자신을 향해 ‘나는 왜 애만 키우고 있지?’ 비난할 수도 있었다. 내 삶에도 구조적 문제가 개입돼있음을 아니까 ‘어떻게 구조를 바꾸는 일에 일조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20대 때부터 페미니즘 운동을 하고 지금도 일선에서 투쟁하는 활동가가 많다. 나는 기혼 여성으로 육아를 담당하여 삶의 경로가 다르다. 한동안은 ‘남자랑 같이 살고, 애 키우고, 가부장제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는 나를 페미니스트라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강의실에서만큼은 ‘페미니스트 교육자’로 정체화하자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각자가 삶의 장면에서 페미니스트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살아가면 된다고 본다. 교육 문제에 신경 쓰는 페미니스트가 많지 않다. 스스로를 여성주의 교육에 포커스를 두는 사람이라 여기며 살고 있다.

- 코로나가 교육 현장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불러왔다.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어떻게 전망하나.

코로나 이후 전 세계가 학교에 가서 대면하지 않아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온라인 교육에서 가장 유효한 방법은 강의를 ‘듣는’ 방식이다. 듣기만 한다면 동영상만 봐도 된다. 별로 차이가 없다. 비대면 플랫폼으로 강의하면 그룹끼리 토론하거나 질의응답도 받을 수 있다는 점 정도가 차이일까.

이제 학생들을 학교로 불러 모으거나 성인 학습자들을 대면 교육 장면에 불러 모으려면 대면에서만 할 수 있는 고유한 교육적 경험을 제공해줘야 한다. 대면으로 학습자를 불러 모으는 것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험하고 실천해봐야 한다. 나도 평생교육 전공에서 관련 서적을 찾아보며 고민 중이다. ‘큰 종이에 의견이나 합의 사항을 써서 붙이고, 학생들이 다른 조 이야기에 코멘트라도 달게 해볼까?’ ‘그룹을 만들어 포스트잇 가지고 돌아다니게 해볼까?’ 생각해보니 비대면으로도 충분히 구현할 수 있겠더라. 물론 교육학에도 체화학습(embodied learning) 이론이 존재한다. 몸과 몸이 마주했을 때의 경험이 온라인 화면으로 일어나는 경험과 다를 수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힘껏 고민해야 한다.

한편, 온라인은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산 일종의 ‘특권층’이라 잘 몰랐다. 지역에 사는 분들이 페미니즘 강좌를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어 좋았다고 하더라. 교육학계는 온라인 교육 관련 세미나도 자주 연다. 일선 지자체 평생학습관은 유튜브 영상도 많이 만들고 있다. 기관에서 비대면 교육 프로그램을 할 때, ‘만들기’가 필요하면 미리 세팅해서 키트를 보내준다. 메타버스도 잘 활용하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 괜찮은 경험이 될 수 있다.

 김동진 대표가 번역, 집필, 기획 등으로 관여한 책들. ⓒ복음과상황 정민호 

- 대표님이 쓴 글들을 보면, ‘배움의 공동체’를 꾸리거나 만나는 일이 우리 삶에 무척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배움이 특별히 공동체의 경험이 되어야 한다는 데 주목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학교교육 중심의 관점에서는 교육을 ‘사회화’로 본다. 한 사회의 구성, 가치를 전수하여 잘 적응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평생교육 관점에서의 교육은 ‘비판적 사고’가 핵심이다. 스스로 자기가 속한 사회나 문화와 거리를 두면서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 교육이다. 혼자만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회 구성원들과 서로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아야 실천으로 이어진다. 이는 공동체, 집단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사회가 진보한다. 우리가 배움의 공동체로 함께할 수 있다면, 생각을 바꾸고 실천을 바꿔서 사회가 발전하는 데 유의미하게 기여할 수 있다.

과거 내가 페미니즘을 만났을 때 생각이 바뀌었지만 사는 모습은 똑같았다. 지지 집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막 배우고 한국에 왔을 때도 주변에 페미니스트 그룹이 존재하지 않았다. 혼자 애 키우면서 강의하고 살았는데, 그런 공동체가 없어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좋은 페미니즘 공동체가 있었다면, 사는 모습이 똑같았더라도 덜 힘들었겠다. 서로 좋은 영향을 주는 공동체는 사회 전체에도 좋은 영향력을 퍼트리게 된다.

- 신앙 이야기도 나눠보면 좋겠다. 《벨 훅스, 당신과 나의 공동체》 역자 서문에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것 중 공동체에 가장 가까운 것이 있다면 미국 유학 시절에 살았던 애선스(Athens)라는 작은 도시의 한인교회다”고 쓴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애선스는 대학 중심의 도시였고, 다니던 교회는 유학생 중심 한인교회였다. 교포가 소수이고, 나머지가 유학생이었다. 대부분 처지가 비슷하고 원가족이 없었다. 매주 토요일 저녁 목장 모임에서 힘을 많이 얻었다. 집집이 돌아가며 목장원들을 초대해 성경공부하고 밥도 먹는 모임이었다. 몇 개 목장이 가족 단위로 돌아가며 남녀 모두가 밥했다. 주일날도 같이 준비해서 먹었다. 성가대 반주를 맡으며 성가대 사람들도 알고 지냈다. 큰아이 출산 전 신혼일 때는 싱글 유학생들 목장에 속해 맛있는 음식 먹으러 놀러 다니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서는 가족 목장에 속해 서로의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함께 지켜봤다. 그런 돌봄의 문화가 이미 형성돼있었다.

사모님이 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그때 교인들이 합심하여 목사님을 돌봤다. 매일 목사님이 식사하시는지 살폈고, 목사님은 교인들을 위해 새벽마다 눈물로 기도했다. 그러다 배우자가 나보다 먼저 졸업하고, 직장이 생겨 서울로 귀국하는 상황에 처했다. 육아와 공부를 병행할 수 없어서 아이를 강원도 원주 시가에 보냈다. 논문 때문에 미국에 서너 달 더 머물렀다. 하루 종일 논문 쓰기가 일과였다. 영어로 종일 쓰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주에 2-3일 동안 글이 너무 잘 써지더라. 교회 갔더니 목사님께서 그 주간에 유독 내 생각이 나서 많이 기도했다고 하시더라. 신기했다. 말로만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 진심으로 서로를 돌보고 사랑으로 섬겼던 공동체였다는 생각이 든다.

-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교회의 성평등하지 않은 모습 때문에 뛰쳐나오기도 한다. 보수적인 교회들에서 신앙생활하며 답답증이 차오르기도 했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계속 다녔던 이유는?

교회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기본적으로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대학 때 찬양팀에 들어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기도실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게 만드는 신앙 체험을 했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가장 좋았던 공동체가 교회였기 때문이 아닐까. 공동체 경험으로 아직도 교회에 희망 같은 것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동안 아이 둘 키우기도 벅차서 여유가 없었다는 이유도 있다. 교회를 옮기려면 유아부가 어떤지도 확인하고, 이것저것 알아봐야 하잖나. 지금 다니는 교회도 옮겨온 곳인데, 너무 노령화돼서 젊은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잘 갖춰진 곳으로 가고 싶었던 적이 있다. 배우자가 말리더라. a가 마음에 안 들어서 a가 잘된 교회로 가면 b가 마음에 안 들 거라면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보이면 또 옮길 것이냐고 묻더라. 많지는 않지만, 지금 교회에서 힘을 주시거나 교회가 조금 더 나아지는 데 나름대로 역할을 하는 분들도 계신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여성주의 묵상모임’에 참여한 후기를 인상 깊게 읽었다. “내 안에서 불화하던 페미니즘과 기독교 신앙도 조금씩 서로를 향해 시선을 돌리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고 썼더라.

내가 하는 페미니즘 일을 놓고 기도하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돌아보니, 페미니즘 문제를 두고 진지하게 기도해본 적이 없더라. 한동안 교회와 페미니즘을 무의식적으로 분리시켜놓고 있었다. 남성 중심으로 의사를 결정하고 여성만 주방봉사하는 모습을 봐도, ‘원래 저런 곳이니까’ 하며 외면해왔다. 앞으로 페미니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설교를 듣거나, 이와 관련한 성경공부에 참여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여성주의 신학 강좌들이 열린다는 안내도 곧잘 보는데, 따로 신학을 공부하고 싶지는 않다. ‘믿는페미’ 온라인 예배에는 계속 참여하고 있다. 내겐 이 예배가 페미니즘과 신앙 공동체가 합쳐진 유일한 통로다.

- 때때로 ‘희망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대표님이 번역한 책들이나 쓴 글들을 보면, 그럼에도 희망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듯하여 용기가 생기더라. ‘교육’과 ‘희망’은 동의어가 아닐까 하는 마음마저 드는데, 어떻게 이 시대 가운데 희망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인간은 잘 안 변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교육은 ‘인간이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가능하다. 성격은 고치기 힘들어도 가치관은 변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페미니즘을 만나기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성격은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가치관은 바뀌었다. 페미니즘을 접하고 평생교육 공부도 하면서 서서히 변했다. ‘인간 전체에 대해 배워야지, 왜 여성에 대해서만 배우지?’ 생각하던 나도 변했으니까.

미국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던 시절, 나와 전혀 상관없는 것 같은 강의실 이론을 삶으로 가져와 일상과 연관 지으며 사람들과 말하기 시작하면서 공부가 재밌어졌다. 평면적인 말로 하면 ‘비판적 사고 교육’이다. 모든 교육은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사고하게 하는 교육이 돼야 한다. 삶의 여러 장면에서 비판적 관점을 가지면 가치관이 변할 수 있고, 사회의 변화도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

벨 훅스 책에서 항상 희망을 발견한다. 절망스럽다가도, 그의 책을 읽으면 마음을 다잡게 된다. 《N번방 이후 교육을 말하다》도, 당시 희망이 없다고 느껴서 기획한 책이다. 만들면서 20명의 저자와 대화해보니, 이렇게 이야기 나누는 일 자체가 희망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과 이어진 끈을, 변화의 가능성을 놓지 않는다면, 아무리 절망적인 순간일지라도 희망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진행 강동석 기자 kk11@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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