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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과 76년생 김동진16

[82년생 김지영] 내 잘못이 아니다 하품을 하며 정류장 팻말 아래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남학생 하나가 김지영씨에게 눈을 맞추며 안녕하세요, 했다. 얼굴이 익숙하기는 했지만 잘 모르는 사람이었고, 김지영씨는 그냥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인가보다 싶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너 걸음 정도 떨어져 서 있던 남학생은 조금씩 조금씩 김지영씨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남학생과 김지영씨 사이에 있던 사람들이 제각각 버스를 타고 떠나자 어느새 남학생은 김지영씨 바로 곁에 서게 되었다. "몇 번 타세요?" "네? 왜요?" "데려다줬으면 하시는 거 같아서." "제가요?" "네." "아닌데요. 아니요. 가세요." 제발 따라오지 마라, 따라오지 마라, 따라오지 마라. 김지영씨는 마음 속으로 기도하며 아무도 없는 정류장에 발을 내디뎠는데, 남학생도 뒤따라.. 2019. 11. 16.
[82년생 김지영] 초경은 *학교 *학년 때였다. 초경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또래에 비해 늦은 편도 빠른 편도 아니었다. 언니도 중학교 2학년 때 월경을 시작했고, 김지영씨는 언니와 체형이나 식성도 비슷하고 꼬박꼬박 옷을 물려 입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 속도도 비슷해서 때가 되었다는 예감은 있었다. 당황하지 않고 언니의 책상 첫 번째 서랍에 있는 하늘색 생리대를 꺼내 쓰고, 언니에게 월경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에휴, 너도 좋은 날 다 갔구나." 김은영씨는 대뜸 그렇게 말했다. (82년생 김지영, 59쪽) (중략) 아랫배를 움켜쥐고 방바닥에 엎드려 숙제를 하면서 김지영씨는 이해할 수가 없다, 는 말을 반복했다. 세상의 절반이 매달 겪는 일이다. 진통제라는 이름에 두루뭉술 묶여 울렁증을 유발하는 약 말고, 효과 좋고 부작용 없는 생리통 전용 치료제를.. 2019. 11. 14.
[82년생 김지영] 48쪽. 언제나 따스하던 오빠의 남향 방 그리고 자매의 방이 생겼다. 가장 큰 방은 부모님과 막내동생이 썼고, 다음으로 큰 방은 김지영씨와 언니가 썼고, 가장 작은 방은 할머니 방이 되었다. 아버지와 할머니는 전처럼 자매와 할머니가 한 방을 쓰고, 남자애가 따로 방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어머니는 확고했다. 연세도 많으신 할머니를 언제까지 손녀들과 같은 방을 쓰시게 할 거냐며, 혼자 편하게 라디오도 듣고 불경도 들으면서 낮잠 주무실 수 있게 방을 따로 내드려야 한다고 했다. ...... 어머니는 자매의 방을 꾸며 주려고 아버지 몰래 돈을 따로 모아두었다고 했다. ...... 1년 후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할머니 방은 남동생의 방이 되었다. 하지만 남동생은 꽤 오래 밤마다 베개를 끌어안고 엄마 품으로 파고 들어와 잠들었다. (82년생 김.. 2019. 11. 12.
[82년생 김지영] 23쪽. 오빠의 티셔츠 김지영씨는 1982년 4월 1일, 서울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키 50센티미터, 몸무게 2.9킬로그램으로 태어났다. 김지영씨 출생 당시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위로 두 살 많은 언니가 있었고, 5년 후 남동생이 태어났다. 방 두 개에 마루 겸 부엌 하나, 화장실 하나인 열 평 남짓 단독주택에서 할머니와 부모님, 삼 남매, 이렇게 여섯 식구가 살았다. 김지영씨에게 남은 가장 오래된 기억은 남동생의 분유 가루를 먹던 장면이다. (82년생 김지영, 23쪽) 으으으... 엄마도 돌아가시고 왕래하는 친척도 없어서 기본 정보가 없다. 김동진씨는 1976년 *월 *일(몰라서 비운 것이 아니라 일부러 생략), 인천에서 태어났다. 말이 인천이지, 엄마 아빠 오빠를 포함한 김동진씨네 가족은 계속 서울에.. 2019. 11. 9.
[82년생 김지영] 15쪽. 추석이 되어 시가에 갔을 때 추석이 되어 시댁에 갔을 때 일이 터졌다. 정대현씨가 금요일에 휴가를 냈고, 세 식구는 아침 7시에 집에서 출발해 다섯시간만에 부산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정대현씨의 부모님과 점심을 먹은 후, 오랜 운전으로 지친 정대현씨는 낮잠을 잤다. ...... 김지영씨는 점심 설거지를 해 놓고 커피를 한잔 하며 잠깐 쉬다가 시어머니와 함께 추석 음식 재료들을 사러 시장에 다녀왓다. 저녁부터는 사골을 우리고, 갈비를 재고, 나물 재료를 손질해 데쳐 일부는 무치고 일부는 냉동실에 넣어 두고, 전과 튀김을 만들 채소와 해산물들을 씻어 정리해 두고, 저녁밥을 차리고 먹고 치웠다. 다음 날, 김지영씨와 정대현씨의 어머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을 부치고, 튀김을 튀기고, 갈비를 찌고, 송편을 빚고, 중간중간 밥을 차렸다. .. 2019. 11. 7.
[82년생 김지영] 9쪽. 김지영씨는... 김동진씨는... 김지영씨는 우리 나이로 서른네 살이다. 3년 전 결혼해 지난해에 딸을 낳았다. 세 살 많은 남편 정대현씨, 딸 정지원양과 서울 변두리의 한 대단지 아파트 24평형에 전세로 거주한다. 정대현씨는 IT 계열의 중견 기업에 다니고, 김지영씨는 작은 홍보대행사에 다니다 출산과 동시에 퇴사했다. 정대현씨는 밤12시가 다 되어 퇴근하고, 주말에도 하루 정도는 출근한다. 시댁은 부산이고, 친정 부모님은 식당을 운영하시기 때문에 김지영씨가 딸의 육아를 전담한다. 정지원 양은 돌이 막 지난 여름부터 단지 내 1층 가정형 어린이집에 오전시간동안 다닌다. (82년생 김지영, 9쪽.) 커억. 맨 첫장부터 걸린다. 담백한 김지영씨와 그의 가족 소개. 나는 뭐라고 쓸 수 있을까. 김동진씨는 우리 나이로 마흔네 살이다. 결혼한지 .. 2019. 11. 5.